[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사는게 재미없고 버거워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고통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무게로 다가오는 요즘이었다.
나를 아는 지인들은 적잖게 놀라거나 실망할 수도 있을 모습이겠지만,
나는 요즘, 내 인생 어떤 순간에도 느끼지 못했던 검은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백점 맞을 수 있는 방법은 없냐, 가메라는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나는데
눈이 어지럽지 않겠느냐, 등의 질문들은,
성실하게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오는 노인네에게 던지는
조소 내지는 비아냥 정도의 시시콜콜한 것이었지만,
도착한 어떠한 편지에도 정성스런 답변을 고민하고 한 자 한 자 답장을 써내려가는
나미야 할아버지.
"...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 줘야지.
인간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159)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고, 시공을 초월한 대화의 당사자들이 여러가지의 기이한 인연으로
맞닿아 있는 구성이, 놀라울 만큼 흡입력있게 나를 당겼다.
나미야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들 다카유키, 그의 손자인 쇼지,
그리고 사연을 보낸 많은 이들과, 환광원으로 이어지는 많은 인연.
삶이란 것은 저리도 끊임없이 이어져 있구나, 인연이란 저렇게 맞닿아 있구나,
그러면서도 저들은 참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구나.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고 애쓰고 있구나.
이렇게 꿈도 사랑도 없이 무기력하게 놓은 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시킨 모히토 한 잔을 홀짝이며,
아직 서른 살 도 채 살아내지 않고 이게 끝이었으면 하는 나는, 참 오만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차적으로 보면 결국 상담을 해 준 대부분의 편지들이
남의 집 담을 넘어 현금이나 좀도둑질 하는 모자란 세 젊은이의 돌직구(?) 무대포 답변들이었지만,
결국 그 답장들 또한 고민을 털어 놓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건
표현이 거칠든 부드럽든, 진심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미 스러져간 낡은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여도,
좀도둑이나 하는 동네 반건달 들이어도,
진심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하려 노력한다면,
인생의 끝자락에 선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또 다시 그들을 일으켜 세울 힘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또 한 가지,
인생을 실제로 풀어간 이는, 고민거리를 가진 그 사람 스스로였다는 것.
답장을 써 준 이들은 결국, 그들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도왔을 뿐.
당신이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훌륭한 답변은 없었다.
현실이 버겁지만,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라고,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꼭 믿어보라고,
그런 말들을 믿고, 그렇게 살아갔던 것은, 결국 스스로의 힘이었다는 것.
시간을 넘나드는 이 먼지냄새 나는 낡은 잡화점에서,
나 역시, 가지런히 쓰여진 정갈한 손편지를, 받은 것 만 같다.
조금만 더 이겨내주기를,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 주기를,
인생의 지도에서 길을 잃은 당신이지만, 이 순간 당신에게 이 책이 쥐어진 것도,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큰 사랑이, 당신을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세상을, 그 놀라운 기적을 다시 한 번 믿어보라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