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의숲
초등학교 때부터 고향집 책장에 늘 꽂혀있던 ‘상실의 시대’를 기억한다. 본당 신부님이 로마로 유학가실 때 주신 책이었는데, 엄마가 스무살 때까지 읽지 못하게 했었다.
대학 입학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드디어 펼쳤다. 그때의 나는 내가 만든 규칙따윈 없는, 보수적인 학교와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예의범절과 규범만이 존재하던 시기였고. 당연히 이 소설은 거북할 수밖에 없었고. 뭔가 죄짓는 생각, 얘네 진짜 왜이래 싶은 생각. 결국 중간에 읽다 말았고.
서른 여섯 뜨거운 여름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너무 좋은거다. 15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길래 이 책이 이토록 좋은걸까 싶을 만큼. 문장 하나 하나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경이로움에 몸서리치며, 몇 개의 문단은 눈으로 읽고 또 읽고, 혼자서 나지막이 소리를 내어 읇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미도리는 정말 멋진 중년의 여성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던 어제의 나와, 다 읽은 오늘의 내가 아주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책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에 들어와 제법 큰 크랙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틈만 나면 읽는 데에 쏟는 지금 이 시간들이 내 인생의 엄청 큰 지각변동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하루키와의 인연은 지금부터다. 이제야 나는 하루키의 문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
#민음사 #무라카미하루키
#K가사랑한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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