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되지않기로했습니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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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며 정말 큰 위로를 받았던 부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모성이 여성의 삶의 최고의 선이자 미로 우대되는 사회에서, 그러한 인식이 너무나 불편하면서도, 이기적이고 인지상정도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표현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인터뷰이들의 대담은 정말이지 사이다 그 자체였다. 출산은 여성으로 태어나 반드시 해야 할 숙원사업이 아니라,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중 하나라는 것.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누군의 비난과 비판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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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개구짐과 장난,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가정에서 자랐고, 그 울타리엔 내가 결심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옳다, 해봐라 해 주신,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신 부모님과 형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웨딩드레스나 유모차를 끄는 모습을 꿈 꿔본 적이 없다. 나이가 들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결심을 해야 할 즈음 진지하게 내 기질과 성격에 대해서도 고민했었는데, 나는 과연 아내와 엄마가 되어서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단언컨대 아니었다. 나는 관계가 아니라 내 스스로의 성장과 성취에 몰두하는 기쁨이 가장 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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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아내와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결심은 어느 순간 사회에서 말하는 '혼기'를 지나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현상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생각하고 고민한 내 '선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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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다 고려한 결심이었어도, 비혼과 비출산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말 녹록치 않다. 많은 무례를 견뎌야 하고, 양보를 하거나 배려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시집 언제 가니? 남자친구는 있니? 부터 시작해서 지금 당장 낳아도 늦는데 더 늦으면 아이 잘못된다 등의 말을 듣는 것은 일상이고, 주변에 결혼하고 아이 낳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어느 모임에 가든 출산 육아 이야기가 대화의 팔할이라, 나는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을 고민과 정보들을 그냥 듣고만 있어야 한다. 친구를 만나러 나왔는데, 육아 정보만 잔뜩 듣고 돌아가는 귀갓길 심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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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관계를 위해 한 마디도 거들지 못하는 이슈를 듣고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내가 친구들에게 기꺼이 보일 수 있는 배려라 생각하고, 출산과 육아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와, 회사의 여러가지 혜택에 대해서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생각하지, 내가 누릴 수 없다고 해서 결코 불평등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대신, 내 분야에서 여성으로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자리에 올라, 똑똑한 여성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힘이 있는 선배가 되고 싶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에게는 방학이나 휴가 때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여유있는 고모이자 이모가 되고 싶다. 부모님께 비혼과 비출산 결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빠 엄마는 딱 한 마디씩 하셨다. 그 결정에 후회없도록 살라는 것과,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하라는 것. 그렇다. 내 결정은, 직접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는 대신, 자라나는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출산 대신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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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책의 저자와 인터뷰이들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읽으면 다소 반발심이 들만한 적나라한 고백들도 있지만,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적군이 아니라 사는 모습이 조금 다른 아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린 모두 타인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살 권리가 있고, 그 어떤 모습이든 세상에 꼭 필요한 귀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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